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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경2.png



발레리나 슈즈 같은 것 신고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착 달라 붙어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산이 신앙이었죠. 히말리야에 가기 위해서 적금도 들었던 제가 잡게 된 밧줄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제 모습을 보시면 군살도 여기저기 붙은 50대 초반의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죠. 그러나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50킬로 정도의 마른 체격이었는데요, 온 몸에 근육이 딴딴하게 붙은 몸으로, 탁 서면 누가 봐도 ‘음 산 좀 탔겠구나.’ 그런 모습이었어요. 

20년 넘는 세월을 산이 신앙이 될 만큼 산에 완전 미쳐서 살았습니다.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산속에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빈혈로 40일이나 병원에 입원했었는데도 산에 미치니까 그것도 문제가 안 되었어요.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차가 뱅뱅 도는데도 죽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무조건 산에 갔습니다. 그러다가 산에 못 가는 날에는 산이 저를 막 부르는 것 같았어요. 제가 처음부터 산을 좋아하거나 산을 탈만한 체력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산을 만나 산에 중독 


     
▲ 김우경 자매 ⓒ한마음교회 
결혼 전에는 제 인생에 별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날부터 남편은 제 인생에 넘지 못할 벽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아무리 저 혼자 열심을 낸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남편은 하는 일마다 될 것 같지 않은 일만 골라서 하고, 아무리 반대해도 하다가 결국은 다 날려버렸습니다. ‘도대체 나랑 결혼은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가정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 ‘아~ 단란한 가정이란 내 몫이 아니구나!’ 마음이 포기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친구들과 실컷 술을 마시고 놀아도 봤지만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결혼 시작부터 우리 집안의 경제는 제가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면서 책임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정말 신기할 정도로 저랑 모든 면에서 마음이 착착 맞는 학부형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는 바로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산을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한 2년 정도 애들까지 끌고 산을 같이 다니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좋아서 따라간 산은 빈혈도 잊을 만큼, 남편이 주는 고통도 잊을 만큼, 묘한 매력으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가 이사를 가고, 덩그러니 저 혼자 남게 되었는데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딱! 산만 남았어요. 저는 그때부터 인터넷이나 지인들, 또는 산에 대한 월간지 같은 것을 통해서 산행경로를 완벽히 숙지하고 거의 혼자 깊은 산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움도 스산함도 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저는 일과 산! 이 두 가지에 모든 것을 맞추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산행을 먼 곳으로 가게 되면 아이들도 최대한 빨리 등교를 시킬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한 겨울에 말입니다. 사는 게 유독 힘든 날에는 사람들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터지는 속을 산에게 얘기하면서, 어쩌고저쩌고 중얼거리며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이러면서 산이 친구가 된 것이죠. 

그런데 아무리 산행을 하고 또 해도 늘 뭔가 아쉬웠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아예 잠도 안자고, 이마에 전등을 매단 채 캄캄한 산길을 열 두 시간 이상은 보통이고, 열일곱 시간까지 쭉 가는 겁니다. 그때 주변에서 저를 보고 산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지만, 열심히 살면서 내 할 일 다 하고 다니는데 왜 미쳤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계속 산에 갔습니다. 취미잖아요. 

더 깊은 중독 암벽등반 

그러다가 더 험한 산을 좀 타봐야 되겠다. 그런 생각에 산행기술을 제대로 한 번 배우려고 실내 암벽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곳은 완전히 다른 신세계였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발레리나 슈즈 같은 암벽화, 무슨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허리에 탁 차고,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착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아, 바로 저거다!’ 온통 제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비록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하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힘든 훈련이었지만, 곧바로 등록을 하고 뛰어들었습니다. 팔과 다리의 근육 운동은 기본이고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 근육을 키우는 혹독한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곳 사람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드디어 자연 바위등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연 바위는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습니다. 지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것도 아닌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실제로 건장하고 쎄 보이는 남자들도 이 과정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 생애 첫 등반을 하던 날 저는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밧줄에 매달려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비명만 지르다 내려왔지만 그동안 제 속에 꽉 차 있던 울분을 다 쏟아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실컷 울고 난 다음에 그 후련함 같은 느낌이었어요. 

자일과 기본 장비만도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무겁고 처음엔 배낭의 무게 때문에 걸음을 떼기도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바위까지 가는 길을 ‘어프로치’라 하는 데요. 일반산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험하고 위험했습니다. 보통사람은 못갑니다. 제가 이제 보니까 미치지 않고는 못가는 길이더라구요. 

암벽을 타기 위해서는 일단 걸어갈 수 있는 최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다음에, 다음날 새벽 암벽을 타기 위해 그곳에서 야영을 하기도 하는데요.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한겨울의 야영입니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너무 추우니까 불도 피우고, 특히 소주를 물처럼 계속 마시면서 잠이 듭니다. 자다가 얼핏 잠이 깨면 저는 다시 소주를 마시고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겨울에 하얀 눈 위에 매트 한 장만 달랑 깔고 침낭 속에서 영하 10도, 영하 20도로 떨어져도 편히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또 등반을 하다보면 바위에 부딪치고 떨어지는 건 기본인데요. 밧줄에 매달려 어떠한 동작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처 난 곳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입으로 빨아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또 저는 온 몸에 멍자국과 상처를 달고 별 생각 없이 무릎에 좋다는 이유로 수영도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좀 친해진 사람이 조심스럽게 묻는 말이 “두들겨 맞고 살 타입은 아닌데 몸이 왜 그러느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봐서 여러분은 제가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타고난 몸치로 다른 사람보다 힘도 더 들고 산행을 다녀오면 상처투성이가 되곤 했습니다. 혹독한 훈련을 하면서 암벽을 타다보니까 왼쪽 어깨에 이상이 와서, 살아 있는 벌로 침도 자주 맞았습니다. 아예 붕붕 살아 있는 벌통을 가지고 다니는 동료가 수시로 피아노 학원에 와서 벌침을 놔 줬습니다. 

히말라야 희망적금 그리고 동료의 죽음 

암벽을 탈 때 제일 선봉에서 길을 트면서 밧줄을 암벽에 걸어 주는 사람을 선등자라고 하는데요. 쉽게 예를 들자면, 배의 선장격인 거죠. 모든 것이 선등자의 통솔 하에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어느새 저는 선등자를 보좌하는 2인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또 20년이 넘도록 피아노학원을 했기 때문에 손이 아주 부드러웠어요. 그런데 거친 바위를 잡아야 하니까, 손바닥을 돌이나 바위에 문질러서 일부러 거칠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피아노학원은 해야 하는데 손에 감각이 무뎌지더라구요. 그래서 갈등이 되긴 했지만 암벽등반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덩치가 컸던 학원을 정리하고 일주일에 2~3일만 개인 레슨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몽땅 암벽등반에 올인했습니다. 

그 무렵 제 아이들은 중, 고등 학생이었고 저도 나이가 많았는데도, 내 평생 딱 한번만이라도 히말라야에 가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그래서 친한 후배와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적금을 하나 부었어요. 우리는 그것을 ‘희망적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실내 암벽장을 직접 운영하고 산행도 함께하며 제가 너무나 좋아했던 후배 두 명이 에베레스트 산에서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일주일동안 헬기로 수색을 했지만 결국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막상 시신도 없이 사진만 걸고 장례 치르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산 사람이 산에서 죽는 게 뭐 어떠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인간에게 죽음은 뭘까? 도대체 이건 뭔가?’ 한순간 허무함이 몰려왔고, 모든 희망이 무너져버렸습니다. 

내 입에서 툭툭 튀어 나오는 찬송가 

그때부터 저는 술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서 등반을 다시 시작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안 되는 겁니다. 열정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렇게 훈련되었던 몸도 동작이 안 나오는 겁니다. 정말 이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 여동생이 이미 그때 저를 위해서 교회 지체들과 함께 제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를 하고 있었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제 입에서 찬송가가 툭툭 튀어나오는 거예요.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도 찬송가가 막 나오니까 입을 틀어막아도 계속 나오는 거예요. ‘어머, 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진짜 멍하더라구요. 

사실 저는 결혼 전에 20년이 넘게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봉사하고 헌신을 해도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은 거예요. 하늘에만 계시고, 성경책에만 계시는 하나님, 내 옆에는 안 계시는 하나님, 그 답답함에 교회를 떠나서 산 세월이 25년이 넘는데 내 입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오다니 참. 

그때 제 여동생이 5년 만에 갑자기 저를 찾아왔습니다. 동생은 자기도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 없이 살면서 저에게 신앙얘기를 자꾸 하는데 저는 하나도 들리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자기가 할 말은 여기에 다 들어있다면서 책 한권을 주고 갔어요. 예전 같으면 동생이 저한테 교회가 어떻고 하나님 어떻고 하면 “너나 똑바로 믿어.” “그렇게 믿으려면 차라리 믿지 마.” 딱 끊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동생을 핍박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때랑 다르게 동생이 어딘가 좀 달라 보이더라구요. 

제가 화장실에서 책을 깊게 보는 습관이 있는데요. 그래서 동생이 주고 간 책을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서 읽는데 그 책속에서 저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하나님, ‘아 이 분이 계셨었지. 맞아 이분.’ 얼마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한참을 그렇게 화장실에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일주일 후엔가 정확히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아무튼 제가 동생한테 전화를 해서 대뜸 하는 말이 “내가 한마음교회를 한번 가봐야 되겠다. 이젠 때가 되었어.” 그랬다는 거예요.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던 제 동생도 너무 놀라고, 저도 상상도 못한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거죠. 

그때 제가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동생을 따라 춘천에 있는 한마음교회에 와서 앉아 있었어요. 토요찬양예배라고 하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기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찬양을 하더라구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그때 제 모습을 기억하는 지체들은 지금도 가끔 농담을 하는데요. 제가 곧 에베레스트 산으로 달려가도 될 정도의 포스였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을 등산복만 입다가 막상 다른 옷을 걸치려니까, 너무 어색하고 변변한 옷도 없었어요. 평범한 신발도 없어서 산악 등산화를 신고 왔거든요. 

그 다음날 주일 1부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시는데 ‘부활? 부활이라고? 이게 진짜였어? 그럼 도대체 지금까지 나는 뭐하고 산거야.’ 그 순간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면서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구나! 아, 이게 죄구나! 내가 죄인구나! 그래서 이렇게 살았구나! 이 분이 진짜 내 주인이구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 마음에 있던 모든 짐들이 그 순간에 완전히 날아갔어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이제껏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이 싹~다 쓰레기였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말씀 하나에 모든 것이 다 해결 되어 버렸어요. 

예배가 끝나고 한마음교회의 어느 분이 저에게 부활의 복음을 차분히 들려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리고 이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성경의 예언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 순간 제 마음에 부활이 진짜니까 성경 말씀도 다 진짜구나. 저는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 드렸습니다. 상황은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제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 보고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고 하더라구요. 

새로운 삶, 그리고 산에서 전도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제 마음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차분히 정리가 되었어요. 신앙과도 같던 산, 평생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술, 남편에 대한 원망, 내가 주인되어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니까 그제서야 십여 년 째 누워계신 친정 엄마가 보이더라구요. ‘사람이 늙고 병들면 다 저렇게 살다 가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가 이제 얼마 못 살걸 아니까 마음이 너무 급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누워계시면서도 이런 저런 쓸데없는 염려들을 계속 하고 계시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엄마가 오늘 죽으면 지옥인데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3개월 정도 엄마 얼굴만 보면 계속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또 전했어요. 그랬더니 성령님의 역사로 엄마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주인으로 마음에 믿고 영접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엄마는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희 가족들이 엄마의 임종을 지키진 못했는데요.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너무나 평안하게 천국에 가셨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부활의 주님을 정확히 만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우리 엄마에게 부활의 주님을 전할 수 있었겠어요.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요? 

저는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은 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밧줄 하나 믿고 생사를 걸었던 저였습니다. 이제는 밧줄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 붙들고 영원한 하늘가족인 교회 공동체 지체들과 주와 복음을 위해 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것 같이 허무해서 찾아갔던 산이 지금은 저의 전도 장소가 되었구요. 물론 다 저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산에서 만나는 사람을 보면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 마음이 그대로 품어지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단지 친구가 좋아서 등산을 시작했거든요. 동네 산에서 좀 더 먼 곳으로, 또 새로운 산으로, 또는 건강을 지키려고,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결국 다 죽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이십니다. 49년이란 긴 시간 늘 뭔가 허전하고, 부족하고, 억울하고. 그래서 산과 암벽 등반에 미쳤던 것은 제가 주인되어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의 실수와 실패를 구실삼아 내가 왕 노릇 하며 내가 주인되어 죽을 때까지 산을 헤매다가 결국은 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마음껏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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