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다른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목회를 하신 아버지를 이어 어머니도 목사 안수를 받으셨고, 형은 신학을 전공했다. 그에 비해 내 믿음은 항상 바닥이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고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뭔가 확실하지 않았고 생각과 감정에 따라 믿음은 늘 흔들리곤 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이나 믿음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중학생 땐 어느 집회에서 방언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수련회에 참가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고, 뒤로 쓰러지는 경험까지 했다. 그러나 모두 그때뿐, 나중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어떤 노력으로도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자 목회자 아들로 태어난 것에 불만을 품은 채 방황의 삶을 살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매일 새벽예배로 단 한 번도 가족여행을 못 한 것 등 모두 불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목회자 자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주위에서 받는 엄청난 기대와 강요들이었다. 이런 괴리감에서 오는 짜증으로 교회 차량 유리를 발로 차 산산조각낸 적도 있고, 컴퓨터며 책상이며 눈에 보이는 물건을 모조리 다 부숴버린 적도 있다. 학교생활도 원만치 않아 선로를 벗어난 기차 같았다.
그러다 형을 통해 춘천한마음교회 수련회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어느 토요찬양예배 때였다. 기도가 시작되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실제적 사건으로 믿어졌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보일 수 없는 표적, 부활의 증거로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 엄청난 고통을 당하시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것이 감사했고 그 사랑에 감격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이런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 이루어 놓으신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기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십자가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앞세웠다. 생명을 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사건이라고, 정말 살아계신 것이 맞느냐고, 왜 내 삶을 힘들게 하느냐고 악랄한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돌이키면 예수님을 죽이자고 외치던 유대인이 바로 나였다.
“아버지! 아버지!” 이름을 수없이 부르며 통곡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하나님! 이제는 절대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이 악랄한 죄인이 감히 주님을 사랑합니다.”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 품안에 거하지 않는 수많은 영혼을 비춰주셨다. 나는 즉시 이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안으로 안겨 드리겠다는 고백을 하나님께 했다. 부활의 확실한 증거로 내 삶은 그렇게 180도 변했다. 목회자 가정에서 겪었던 괴로움은 모두 사라지고 방황의 삶도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도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족여행도 가지 못하지만 영원한 것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 가족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향한 기대와 강요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고 감사하게 되었다.
이제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너무나 부족하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할 것이다. 순교의 잔이 온다하더라도 마땅히 기쁨으로 감당할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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