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를 잘 굴려서 기회를 잘 포착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셨을 때는 미꾸라지 중에 미꾸라지였다. 이런 미꾸라지 기질은 어렸을 때부터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숨바꼭질 술래를 시켜놓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고, 대학 때는 나를 전도하는 친구를 꾀어 세상을 함께 즐겼다.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착착 진행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김녕 김씨 종손으로 일년에 10번 가까운 제사를 지냈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문중의 제사까지 책임져야 했다. 아내는 선교를 꿈꿀 만큼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데 믿지 않는 나와 결혼하여 제사를 지내야 하는 현실과 하나님께 대한 죄책감으로 결국 우울증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아내와 함께 친구에게 부활의 복음을 들었다. 아내는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마음교회 수련회에 다녀온 후 굳었던 얼굴이 환하게 변했고, 우울증까지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후 아내를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해 보았지만 아내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믿음을 지켰다.
그때 아내의 모습에서 ‘정말 무엇인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교회에 따라갔다. 교회에 와서 나는 무엇보다 뜨겁고 기쁨에 넘치는 모습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떻게 예수님만이 진짜인가?’ ‘믿을 만한 증거도 없는데 하나님은 정말 계실까?’ 등 나의 의문들은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졌다. 성경에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이 분명했다. 그것은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이루어진 확실한 사실이었고,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도,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도 다 믿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매 순간 마음 한구석에 ‘내가 보지도 못했고 과학적으로 증명도 할 수 없는 이 사건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던 중 수련회 날, “세상의 눈으로, 세상의 가치관으로 부활을 바라본다면 천년이 지나도 굴복될 수 없다”는 목사님의 외침이 그대로 내게 임했다. 그랬다. 확실한 사실을 통해 바라보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부활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 가치관에 갇혀 있던 나에게 주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던 동생 야보고,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했던 도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였던 사도 바울을 보게 하셨다. 이들 모두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순교했음을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 증거 앞에 더 이상 세상 가치관을 핑계 삼아 믿지 않았던 내 마음 중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드디어 사도행전 2장의 “어찌할꼬!”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실 수 없다’는 말씀에 순종하고 제사를 끊기로 결단하였다. 제사를 끊으면서 정말 심장을 파고드는 아픔이 있었지만 동역자인 아내가 있어서 함께 돌파할 수 있었다. 밤 문화를 깨끗이 정리하게 되었고, 평생 종갓집 종부로 살아오셨던 어머니를 부족한 나의 입술을 통해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다.
이 확실한 복음과 공동체가 있어 이제는 세상에 응답하는 미꾸라지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yes, sir”로 순종하는 군사가 되었다. 주님 주신 이 사명을 가슴에 품고 미꾸라지 같은 저를 갈아서 주님의 공동체에 녹아드는 주님만의 추어탕이 되기를 다짐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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