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한 나는 웬만한 일은 대범하게 넘어가는 성격이었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로 쉽게 넘어가지 못했다.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관한 말씀은 몇 년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이 말씀이 풀어졌을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막연히 하나님은 숫자상으로 한 분인 줄 알았다. 마치 한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 직장에서는 교사, 교회에서는 집사인 것처럼 하나님은 한 분인데 구약에서는 성부의 모양, 신약에서는 성자의 모양, 현 교회 시대에는 성령의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배웠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절을 읽는데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 또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 분이 나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학 공부를 하고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양태론(樣態論)’으로 이미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것이었다.
그러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확증했을 때 드디어 양태론에서 빠져나왔다.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고 한 도마의 고백을 통해 성부 하나님만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 또한 계심이 분명해졌다. 또한 부활은 예수님을 살리신 성령 하나님(롬 8:11)과 이 땅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사신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신 성부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눅 22:42).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삼위일체를 푸는 결정적 열쇠인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독립된 위격(位格)을 가지지만 ‘본질’이 ‘하나’인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세 의(義)가 아니라 한 의(義), 세 사랑이 아니라 한 사랑, 세 능력이 아니라 한 능력이다.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체’ 즉 본질이 하나라는 부분은 이 땅에 없는 신비로운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질이 ‘하나’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독립된 위(位, person)로 존재하고, 다른 위보다 낫거나 못하지 않은 하나(unity)의 본질을 가졌다. 역할과 직무는 다르나 각 위는 동등하시며 서로 분리되지 않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에 관한 말씀은 단순히 하나의 신학 이론이 아니라 성도들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이다. 첫째, 예수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둘째, 성령 하나님께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경배를 드리게 된다.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면 성령님께 능력만을 얻으려고 하거나 성령님을 사역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며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동일한 경배를 드리게 된다.
셋째, 삼위일체를 통하여 ‘교회의 비밀’을 알게 된다. 교회 공동체의 연합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과 같은 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요일 3:16)는 고백이 실제가 된다. 창조 사역뿐만 아니라 구원 사역도 함께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성부 하나님께 회개하고(행 20:21),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주인(Lord)으로 믿는 놀라운 역사가 모든 교회 가운데 불 일 듯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원문기사링크 http://bit.ly/1sYi3K5